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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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 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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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기록
외무협판인 윤치호(Chi Ho Yun)가 1905년 한인 감리교회의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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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1959-01-28
국민회 창립기념 五十주년을 당하여
금년 二월 一일은 미주와 하와이 국민회 창립 제五十주년 기념일이다. 五十주년이란 시간을 무궁무진한 공간에 비치우면 순간도 되지 못하는 것이로되, 인생 백년초로 같은 생활시간에 비하면 장구한 시간이다. 사람이 개인으로 가정으로 사회로 五十년을 지나는 동안에는 잘되는 일, 못되는 일, 기쁜 일, 슬픈 일, 풍우한서의 허다한 파동이 중중첩첩 하는데 개인으로, 가...
출처: 국민보
1956-07-11
조선의 현재와 장래 계속
조선이날로 쇠퇴하여가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하여 재조할 생각을 가진 이도 꽤 많이 있었을는지 모르되 사업으로도 남은 것이 없고 언론으로도 남은 것이 없으니 갑신이전에 일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약용선생이 꽤 새로운 생각을 가지셨다 하지만은 나는 아직 그 어른의 글을 읽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이 혹 새로운 사상을 가지셨다 ...
출처: 국민보
1956-06-06
나의 3・1운동 체험기(2)
1910년에 한일합병이 되자 일인들은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정치적으로 극도의 부자유・압박・위협・공갈의 갖은 수단을 쓰면서, 관립 소학・중학・대학을 설립하여 교육을 통하여 소학교에서부터 친일사상을 넣어주며 일본사람과 잘 협력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고급관리며 경제적 혜택을 가지게 하여, 배일사상은 해만 있을지언정 하등의 이익이 없다는 것을 실지로...
출처: 국민보
1953-09-30
우리 중의 신용을 세우자
중국 공자 당시 공자님 제자로는 매일 세 번 자기가 자기의 잘못을 살펴 볼 때에 누구와 신용을 잃었는가 살핀다 하였다.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신용이 없으면 바람의 사람이 되고 또 신용 없는 사람으로는 큰 일 작은 일을 협력 할 수 가 없고 개인 개인 간에도 아무 관계나 조약을 맺을 수가 없다.
오늘 문명 한 나라 사람들은 그 신용 지키기를 엄중히 함으...
출처: 국민보
1953-05-20
상식
누가 우리 나라 애국가를 지었느냐. 이 세상 어느 나라 제 나라 사랑하는 애국가가 있음으로 그 날라 국혼을 ●●하고 기타 전 민족의 애국성을 고취한다. 우리 나라가 일본에 구속을 벗어난 이후로 국내 국외를 물론하고 상기관인이 집회할 때에는 애국가를 합창하는데 아직까지 이(동해물) 애국가를 누가 지었는지 아는 사람이 ●●●였다. 미국은 ●● 부강한 나라이로되...
출처: 국민보
국민보 관련 기사 (20건)
1959-01-28
국민회 창립기념 五十주년을 당하여
금년 二월 一일은 미주와 하와이 국민회 창립 제五十주년 기념일이다. 五十주년이란 시간을 무궁무진한 공간에 비치우면 순간도 되지 못하는 것이로되, 인생 백년초로 같은 생활시간에 비하면 장구한 시간이다. 사람이 개인으로 가정으로 사회로 五十년을 지나는 동안에는 잘되는 일, 못되는 일, 기쁜 일, 슬픈 일, 풍우한서의 허다한 파동이 중중첩첩 하는데 개인으로, 가정으로, 사회로, 이 五十년 장구한 세월을 한결같이 꾸준히 유지 진행하여 왔으면 이는 용이한 일이 아니요, 가히 찬양할만한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하는 일이 아침에...
1956-07-11
조선의 현재와 장래 계속
조선이날로 쇠퇴하여가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하여 재조할 생각을 가진 이도 꽤 많이 있었을는지 모르되 사업으로도 남은 것이 없고 언론으로도 남은 것이 없으니 갑신이전에 일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약용선생이 꽤 새로운 생각을 가지셨다 하지만은 나는 아직 그 어른의 글을 읽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이 혹 새로운 사상을 가지셨다 하더라도 서적을 끼친 것 외에 특히 무슨 사업을 시작한 것을 듣지 못하니 그를 민족개조운동의 제一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과거 四十四年전 갑신에 김옥균, 박영효 등의 정부개혁...
1956-06-06
나의 3・1운동 체험기(2)
1910년에 한일합병이 되자 일인들은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정치적으로 극도의 부자유・압박・위협・공갈의 갖은 수단을 쓰면서, 관립 소학・중학・대학을 설립하여 교육을 통하여 소학교에서부터 친일사상을 넣어주며 일본사람과 잘 협력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고급관리며 경제적 혜택을 가지게 하여, 배일사상은 해만 있을지언정 하등의 이익이 없다는 것을 실지로 보여주도록 크게 노력하였다.
1913년에 소위 데라우치(寺內正毅)총독 암살사건이라는 지어낸 허위사건으로 민족주의자로 일인들과 협력하기를 싫어하는 지도급과 청년 중에서 105인을...
1953-09-30
우리 중의 신용을 세우자
중국 공자 당시 공자님 제자로는 매일 세 번 자기가 자기의 잘못을 살펴 볼 때에 누구와 신용을 잃었는가 살핀다 하였다.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신용이 없으면 바람의 사람이 되고 또 신용 없는 사람으로는 큰 일 작은 일을 협력 할 수 가 없고 개인 개인 간에도 아무 관계나 조약을 맺을 수가 없다.
오늘 문명 한 나라 사람들은 그 신용 지키기를 엄중히 함으로 피차간 신용도 하고 크나큰 무슨 회사 무슨 공장 무슨 합장을 함으로 그 나라는 부유하고 각 개인 개인 간에는 융화 융융한다.
멀리 다른 곳은 차치하고 하와이만 말하자면 어찌하...
1953-05-20
상식
누가 우리 나라 애국가를 지었느냐. 이 세상 어느 나라 제 나라 사랑하는 애국가가 있음으로 그 날라 국혼을 ●●하고 기타 전 민족의 애국성을 고취한다. 우리 나라가 일본에 구속을 벗어난 이후로 국내 국외를 물론하고 상기관인이 집회할 때에는 애국가를 합창하는데 아직까지 이(동해물) 애국가를 누가 지었는지 아는 사람이 ●●●였다. 미국은 ●● 부강한 나라이로되 미국 인민 중에도 미국의 국가를 누구가 지었는지 알 사람이 많지 못한데 일본에게 근 사십 년간 속박을 받은 우리로써는 더욱 알 사람이 매우 적을 것은 면치 못할 일이다. 우리 애...
1953-05-20
윤치호 씨 저작은 이하와 같고 안창호 씨의 변경은 추후와 같다
一절 성자신손 오백 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수려 동빈도는
우리 나라일세.
一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二절과 三절은 같고
四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사농공상 귀천 없이
직분만 다하세.
四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은 변경 없습니다....
1952-01-30
못먹을 버섯
우리나라 속어에 못먹을 버섯은 첫 삼월에 장 한사발 지고 부뚜막에 나서, (나 여기 와쏘) 하고 고함친단 말이 있다. 대체 먹지 못할 버섯은 먹지만 못할 뿐더러 보기도 싫은데 거기다가 고함까지 나 여기 왔소 하고 친다면 그보고 듣는 사람은 응당 그 버섯을 미워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망할 때나 망한 후로 참말로 애국자들이 전국에 몇이나 되었겠는가? 지금 한국에서 대관 노릇하는 자들과 소위 국회회원들 중에도 거의는 일본놈의 사냥개 노릇을 함으로 제 나라동포를 우리의 원수 왜놈보다 몇층 더 행악하던 반역자들이 아닌가? 지금에 ...
1951-06-06
한국의 일사
이교승은 연안 이씨의 월사 자손인대, 그 중조가 서울 동촌의 본집을 떠나서 충청도 옥천리원으로 낙향하였으니 교승은 이원 출생이요, 한 때에 문한으로 경향하 적지 않은 이름을 얻었든 이순익의 종손이다.
교승은 三형제의 끝으로 (그 장형은 돈숭, 중형은 휘승) 그 가세가 도지 받아 계량이 나하고 넉넉지는 못하였다. 그나마의 가산도 구사하는라고 유경하는 十여 년 동안에 늘지 못하고 줄게 되었다.
그 연령이 三十이 넘은 후에 초직으로 강원도 춘천 세무주사로 내려가서 三년을 넘기어 있다가 一九○五년 소위 五조약이라는 것이 되는 때에 그 ...
1949-11-30
국민회의 사명
국민회(國民會)는 일찍이 무형정부(無形政府)로 자인하여 왔으니, 이것이 민주제로 조직되어 시종이 여일하게 그 주장을 지키었으니, 그 주장은
1. 민권 민주제의 본위는 인민이다. 민주제는 말이 많은 것이니 중간에 그것을 협의하고 그것으로서 당의 세력을 수립하려고 찢어나간 파들이 있고, 그같이 분열하여 가지고 나간 파들은 각각 어느 개인 독재자들을 추대하기 위하여 독재제로 변하고 독재의 병이 깊이 들었다. 그 동안 종종의 곤란을 당하면서도 국민회는 민권의 주장을 지켜왔으나, 실상 민주제를 고집하여온 한인 정치 조직들 중에 유일 모범적...
1938-03-16
안창호선생의 약전
「강영각씨 진술 중에서」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선생은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1879년에 태어나 서재에서 구학문을 공부하고 엄한 모질에게서 많은 교훈을 받아 유년시대부터 정직하고 진실하다는 칭예(稱譽)가 향당(鄕黨)에 자자하였다.
16세에 서울 가서 독립협회(獨立協會)에 연설한 후에 선생의 웅변이 출중하게 공인되었고 19세에 일본 동경을 가서 웅변의 성예(聲譽)가 더욱 발전되었다.
1902년에 그 부인과 같이 미국에 유학차로 갔다가 사회사업에 착수하여 1905년에 북미한인계의 첫 조직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하였으니 그...
가족 관계도
가장
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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