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박부 기록
국민보 12건
미디어 8건
미디어 기록
도산 안창호(앉아 있는 사람)와 정원명(Won Myung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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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단이 프린세스 극장에서 개최한 도산 안창호 환영회. 1924년. 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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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안현경(Hyun Kyun Ahn), 도산 안창호, 홍한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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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내각 관료들.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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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의 장손 로버트 안(Robert Ahn, 중앙), 로버트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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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안수산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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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1963-03-27
도산 간 지 二十五년 새로 밝혀진 일화
十일로 二十五주기를 맞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일본 관헌에게 붙잡힌 것은 한 소년과의 약속 때문이란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소년이 지금은 마흔여덟 살로 서울에 살고 있다.
동국대학에서 「불란서어(프랑스어)」를 강의하고 있는 「이만영」 씨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던 一九三二년 상해 교민단장으로 있던 고 (춘산=이필유) 씨의 맏아들이다.
이씨는 상해...
출처: 국민보
1963-03-20
도산 안창호 선생 二十五주기 맞아 미망인 이씨를 초청
한국 겨레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고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二十五주기를 맞는 지난 十일을 기하여 국민회당에서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이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도산 선생의 부인 (헬렌 안=본명은 이헬렌 七十九세) 여사가 정부 초청을 받고 셋째아들 (필영) 씨와 함께 八일 하오 고국을 떠난 지 六十一년 만에 처음 환국하였고 필영(三十六세) 씨는 생후 처음 고...
출처: 국민보
1959-07-08
도산을 구출한 염석산 장군
(一) 一九二七년 이른 봄에 버들가지에 물이 올라 파릇파릇 새움이 터나오고 있을 무렵 드높은 (태원성) 성문위에는 한 폭의 (프랭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환영 대한민국임시정부 영수 안창호 선생) 임시정부의 국무령이라고 하며는 오늘날의 대통령인 터인데 이 국무령과 내무총장을 겸임하고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산서성 정부의 주석으로 유명한 중국의 군벌인 (...
출처: 국민보
1956-06-20
도산선생의 탄사 본지특파원 성동호 씨 원불교 본지 현지답사 지상의 낙원은 건설되는가
너무나도 고명한 독립투사 안도산 선생(도산 안창호)이 감탄한 새 종교 원불교가 지행하고 가르침은 무엇인가
창입자 고 박중빈 선생 현종법사 송규씨...
출처: 국민보
1956-05-30
나의 3・1 학생운동 체험기(1)
@@@ @@@@ @@@
3・1운동이 벌써 36년 옛날 일이라 기억에 흐린점도 있고, 또 그때 같이 모여 의논하고 뛰어 다니던 친구요, 동지이던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김태연, 경성의학 전문학교의 김위건, 세브란스의 김문진 등 씩씩하고 용감하던 이들이 오늘은 다 고인이 되고 말았으니 찾아가 옛날 이야기를 더듬어 볼 곳도 없다. 이 글을 초(기록)함에 먼저...
출처: 국민보
국민보 관련 기사 (12건)
1963-03-27
도산 간 지 二十五년 새로 밝혀진 일화
十일로 二十五주기를 맞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일본 관헌에게 붙잡힌 것은 한 소년과의 약속 때문이란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소년이 지금은 마흔여덟 살로 서울에 살고 있다.
동국대학에서 「불란서어(프랑스어)」를 강의하고 있는 「이만영」 씨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던 一九三二년 상해 교민단장으로 있던 고 (춘산=이필유) 씨의 맏아들이다.
이씨는 상해의 「불란서(프랑스)」 조계에서 일어났던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한·일(한일) 소년동맹위원장이었던 열여섯 살의 이씨는 초하루에 어린이 날 행사를 위해 도산 선생에게 ...
1963-03-20
도산 안창호 선생 二十五주기 맞아 미망인 이씨를 초청
한국 겨레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고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二十五주기를 맞는 지난 十일을 기하여 국민회당에서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이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도산 선생의 부인 (헬렌 안=본명은 이헬렌 七十九세) 여사가 정부 초청을 받고 셋째아들 (필영) 씨와 함께 八일 하오 고국을 떠난 지 六十一년 만에 처음 환국하였고 필영(三十六세) 씨는 생후 처음 고국 땅을 밟게 되는 뜻깊은 여행이다.
(국민 각자가 자기와 나라를 위해 부지런해야 하고 독립적인 생활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으로 十八세 때 조국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이후 六...
1959-07-08
도산을 구출한 염석산 장군
(一) 一九二七년 이른 봄에 버들가지에 물이 올라 파릇파릇 새움이 터나오고 있을 무렵 드높은 (태원성) 성문위에는 한 폭의 (프랭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환영 대한민국임시정부 영수 안창호 선생) 임시정부의 국무령이라고 하며는 오늘날의 대통령인 터인데 이 국무령과 내무총장을 겸임하고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산서성 정부의 주석으로 유명한 중국의 군벌인 (염석산) 장군을 만나려고 상해(상하이)로부터 만주로 가는 길에 (태원)에 들린 것이었다.
만주에는 二년전인 一九二五년 六월 十一일에 만주의 왕이 타는 장작림과 조선총독부의 경무국...
1956-06-20
도산선생의 탄사 본지특파원 성동호 씨 원불교 본지 현지답사 지상의 낙원은 건설되는가
너무나도 고명한 독립투사 안도산 선생(도산 안창호)이 감탄한 새 종교 원불교가 지행하고 가르침은 무엇인가
창입자 고 박중빈 선생 현종법사 송규씨...
1956-05-30
나의 3・1 학생운동 체험기(1)
@@@ @@@@ @@@
3・1운동이 벌써 36년 옛날 일이라 기억에 흐린점도 있고, 또 그때 같이 모여 의논하고 뛰어 다니던 친구요, 동지이던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김태연, 경성의학 전문학교의 김위건, 세브란스의 김문진 등 씩씩하고 용감하던 이들이 오늘은 다 고인이 되고 말았으니 찾아가 옛날 이야기를 더듬어 볼 곳도 없다. 이 글을 초(기록)함에 먼저 이 친구들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진다. 3・1 독립운동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기적이라고 해야 옳겠다. 기적이라는 것은 보통 상식적으로 보아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민족의 비참한 운명을...
1955-07-06
진실 정신 최남선
一九十九年 三月 一日 운동(3·1운동)에 독립선언문을 세상이 놀라게 지은 최남선 선생은 서울 새벽 창간 기념호에 진실 정신이란 제목으로 자자 절절히 우리에게 교훈한 본문을 그대로 등재한다.
一. 내일 신상으로 반세기라는 五十年 전을 회상할 때에 우리 국가, 민족 사회에 중대한 변화가 하도 많아서 하마 꿈이 아니었던가 하게 된다.
현재 전시 전후를 통하여 국토와 국민은 남북으로 분열된 터이어서 놀란 혼이 아직 진정하지 못한 것을 느끼고 있다.
오늘날의 국세와 세태를 바라볼 때 특별히 五十年 전에 도산 안창호 선생과 더불어 한국인...
1955-04-06
부인국민회 제三十六年 기념
금 四月 一日은 하와이 대한부인국민회 제 三十六年 창립기념일인 바 이날은 일기가 좋지 못하여 먼 곳에서는 오신 분이 많지 못하였다. 또 우리의 고래습관으로 반포한 정각에 회원들이 내참치 못함으로 七시 반에 호항(호놀룰루) 지방 회장 양수연 씨가 승석하고 개회를 선포한 후 박금우 씨 인도로 무궁화 애국가를 일동이 병창하고 중앙부 부회장 송명자 씨의 간곡한 기도가 있고 주석 양수연 씨의 취지 설명이 있고 이어 박금우 씨, 차정임, 김차순, 박애스더 四시의 국기가 있고 박금우 씨의 하와이 부인국민회 역사진술이 있고 중앙부장 김아지 씨가 ...
1955-02-09
재미한인 사회가 무식한 회라고
-전호에서 계속-
독자 여러분 탄식들이나 하고 앉아있는 것이 하등에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러하므로 이 때는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고 예수가 탄생하신 때올시다. 더욱 이 때에 우리는 한국을 구원하여 낼 지도자를 탄생케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함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질이는 중대 문제는 성경을 보니 주여 주 부르는 자마다 천국에 못 들어가고 오직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였고 또 보니 의로운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말씀이 성경에 명백히 기재되온지라 그러함으로 사지에 빠진 가련한 동족들을 ...
1954-08-25
안도산 선생 애도문
대한민국 三十年 三月 十日에 김구는 삼가 고 도산 안창호 동지 선생 영전에 수언을 올리나이다.
선생이여, 거금 十五 年 전 四月 二十九日 윤봉길 의사가 상해(상하이)에서 적괴 백천 등을 박살함으로써 찬란한 세계역사의 한 페이지를 창조하던 그날에 우리는 선생을 적에게 빼앗겻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승리의 소유자가 그 쾌미와 그 영광을 끝없이 느끼면서도 선생을 잃은 불행을 회복하려고 우리의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척에 있는 왜 영사관에서 선생을 구출하려고 우리의 노한을 짜볼 대로 짜보았던 것입니...
1948-12-08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복정책이 판이
우리가 다 알듯이 히틀러가 남의 나라를 정복하던 방식과 스탈린이 남의 나라를 정복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다. 히틀러의 정복은 그 시작할 때에 눈먼 장님은 귀로 들어서 알게 되었고 귀먹은 귀머거리는 눈으로 보아서 알게 되었으되, 스탈린의 정복은 그 시작할 때에 쥐도 새도 모르게 하였다. 히틀러는 남의 나라 하늘을 비행기로 덮으며 탱크와 대포로 남의 도시들을 파괴하며 그 정부들의 두령을 굴복시키고 그 강토를 합병할 때에 뇌성벽력과 같이 굉장한 소리에 산천초목이 음직음직하였고 금수어별이 날뛰고 벌벌 떨었고 정복을 당한 수억만의 생령들은 그...
가족 관계도
가장
도산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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