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선박부 기록
국민보 20건
미디어 2건
미디어 기록
고종. 1900년경.
사진
고종황제 탄신 기념행사, 에바농장(1907)
Emperor Kojong’...
연대기
1963-07-17
이조 오백 년 야사
을미사변과 함께 정사는 개화파의 손으로 넘어갔다.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은 세계 사조에 발맞추어 착착 새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백성들은 어디까지나 우매했다. 맹렬한 반대운동 폭거가 이 신문화 운동을 뛰어 버렸다. 그러자 또 오랫동안 다투어 오던 노서아(러시아)와 일본의 두 나라가 싸움을 일으켰다.
섬나라 적은 일본은 잘 싸웠다. 세계의 ...
출처: 국민보
1963-07-10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그들을 위하여 만석보란 훌륭한 보가 있었음에도 조병갑은 보를 만들었고 노역비는 한 푼도 주지 않고 그 보를 쓰는 세라 하여 가혹한 방법으로 한 두락에 얼마씩을 바치라 하였다.
그것은 한 해 농사를 다 주어도 모자라는 비싼 것이었다.
백성들은 생각다 못해 청원이나 해보기로 했다. 전봉준이 말마디나 하는 사람 四十여 명을 거느리고 관 안에 들어가 사정을 했다....
출처: 국민보
1963-06-26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몇몇의 외국인사와 새로운 사상에 눈 뜬 선각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기는 하였지만 난신들이 가득한 조정의 정사는 고쳐지지 않았다. 무당 판수들은 떼 지어 궐내에 드나들었고 벼슬 팔아먹기, 백성 토색하기가 공공연히 행해졌다.
왕은 궁중에 드나드는 무당들에게 상금으로 감역 도사 첨지를 무수히 주었다. 그러면 무당들은 이름 안 쓰인 그 첨지를 팔아서 돈을 썼다. ...
출처: 국민보
1963-06-12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민비의 청으로 청나라가 대군을 보내 한성 정국을 좌우하게 되자 일본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앞서 쫓겨 간 화방의질이 군함 네 척에 군사 일 천 명을 싣고 다시 건너왔다. 그들의 견책에 대하여 정부에서는 이유원, 김홍집 등을 보내 제물포조약을 맺고 배상금 五十만 냥을 물고 군란의 괴수를 잡아 죽이는 등 사의를 표명하였다.
일본 공사관은 다시 진고개에 그들의 기...
출처: 국민보
1963-06-05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여기저기서 불평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가마니에 혹 잘못되어 돌이 섞였다면 몰랐으나 모두가 탄 것은 변질 되고 돌투성이 쌀이었다. 그중에 어느 군총이 쌀을 타들고 쌀자루를 들고 돌아가지도 않고선 여러 군총들 으름에 끼이면서 크게 소리쳤다.
「여 오라질 녀석, 이걸 쌀이라고 주나」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창리가 되던 말을 던지더니 이쪽으로 왔다.
「지금...
출처: 국민보
국민보 관련 기사 (20건)
1963-07-17
이조 오백 년 야사
을미사변과 함께 정사는 개화파의 손으로 넘어갔다.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은 세계 사조에 발맞추어 착착 새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백성들은 어디까지나 우매했다. 맹렬한 반대운동 폭거가 이 신문화 운동을 뛰어 버렸다. 그러자 또 오랫동안 다투어 오던 노서아(러시아)와 일본의 두 나라가 싸움을 일으켰다.
섬나라 적은 일본은 잘 싸웠다. 세계의 예상을 깨뜨리고 노서아(러시아)로 하여금 손을 들게 했다.
거센 그들의 손은 이 나라를 혼자 다루게 되었고 아무도 방해하는 자가 없었다.
을사보호조약의 설치 그리고 헤이그 밀사 사...
1963-07-10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그들을 위하여 만석보란 훌륭한 보가 있었음에도 조병갑은 보를 만들었고 노역비는 한 푼도 주지 않고 그 보를 쓰는 세라 하여 가혹한 방법으로 한 두락에 얼마씩을 바치라 하였다.
그것은 한 해 농사를 다 주어도 모자라는 비싼 것이었다.
백성들은 생각다 못해 청원이나 해보기로 했다. 전봉준이 말마디나 하는 사람 四十여 명을 거느리고 관 안에 들어가 사정을 했다. 그러나 조병갑은 듣지 않고 오히려 호된 매질을 하여 내쫓았다.
이에 백성들의 울분은 터졌다.
전봉준은 정익서, 김도삼과 호응하는 군중 三천여 명을 이끌고 보를 허물어뜨리는 한편 ...
1963-06-26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몇몇의 외국인사와 새로운 사상에 눈 뜬 선각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기는 하였지만 난신들이 가득한 조정의 정사는 고쳐지지 않았다. 무당 판수들은 떼 지어 궐내에 드나들었고 벼슬 팔아먹기, 백성 토색하기가 공공연히 행해졌다.
왕은 궁중에 드나드는 무당들에게 상금으로 감역 도사 첨지를 무수히 주었다. 그러면 무당들은 이름 안 쓰인 그 첨지를 팔아서 돈을 썼다. 하루에도 수백 장씩 첨지가 나갔다고, 그만큼 백성들은 돈을 빼앗겼다.
당시 어떤 부유한 집 과부는 강제로 맡기는 벼슬 첨지를 마지못하여 사면서 「나는 여자라 벼슬할 수가 없고 우리...
1963-06-12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민비의 청으로 청나라가 대군을 보내 한성 정국을 좌우하게 되자 일본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앞서 쫓겨 간 화방의질이 군함 네 척에 군사 일 천 명을 싣고 다시 건너왔다. 그들의 견책에 대하여 정부에서는 이유원, 김홍집 등을 보내 제물포조약을 맺고 배상금 五十만 냥을 물고 군란의 괴수를 잡아 죽이는 등 사의를 표명하였다.
일본 공사관은 다시 진고개에 그들의 기를 올렸고 자연히 원세개가 고는 청국의 힘과 대치되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두 힘을 배경으로 수구, 개화로 파가 갈리었다. 수구당이 대개 척신 종실들의 모임으로 청국에 의뢰하자는 시...
1963-06-05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여기저기서 불평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가마니에 혹 잘못되어 돌이 섞였다면 몰랐으나 모두가 탄 것은 변질 되고 돌투성이 쌀이었다. 그중에 어느 군총이 쌀을 타들고 쌀자루를 들고 돌아가지도 않고선 여러 군총들 으름에 끼이면서 크게 소리쳤다.
「여 오라질 녀석, 이걸 쌀이라고 주나」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창리가 되던 말을 던지더니 이쪽으로 왔다.
「지금 누가 무어라 했지?」
군총들은 모두 움찔했다. 직책은 비록 한 게 곡간지기에 안 했지만 그는 선혜청 당상 민겸호의 청지기였기 때문이다.
창리는 똑바로 오더니 조금 전에 불평한 군...
1963-05-29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병자수호가 이루어지자 국정도 선진 열강의 영향을 받아 여러모로 쇄신 개체되었다.
고종 十八년에는 신사 유람단이라 하여 박정양, 어윤중 등 십여 명이 일본에 건너가서 그 문물제도를 시찰하였고, 또 김윤식을 영신사로 하여 六十九명의 청년 학도가 청국 천진에 가서 신기계에 관한 지식을 습득했다. 이들이 돌아오자 각 방면에서 신문물이 일어났다. 조정의 제도에도 일대 변혁이 있었고 군세도 종래의 오영 외에 무위장의 두 영이 불었다. 일본인 굴본예조를 시켜 신식훈련을 실시하고 사내의 기운에 퍼떡이는 젊은이들을 모았다. 자연 구영들은 홀대되었다...
1963-05-15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고종비 여성 부원군 민치록의 따님 민씨가 명성왕후다. 본래 대원군이 그로 중궁을 가례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끝내 권력을 한손에 쥐고 싶었던 그것으로 민치록이 죽어 없고 그 양자 민승호는 대원군 부인의 친속이었기로 안심하고 맞아 드린 것이었다.
이조 五백년 동안 부원군 없는 중궁을 맞아 드리기는 이때 뿐이었다. 그만큼 대원군은 수지 속에 밝았던 것이다. 병인년 三월 이십일 일에 가례를 지냈으니 때에 고종의 춘추는 十五세였고 중전은 십육 세였다.
민씨는 큰 키에 얼굴이 좀 검은 편이었다. 아마 미인은 못된 듯했다. 그러나 많이...
1963-05-15
서울 대로에 조랑말 신행
일요일인 十四일 서울 한복판에 말 탄 신랑과 가마 탄 신부의 행렬이 등장하여 몰려든 수천 관중 때문에 백차가 나오는 등 한때 수선을 피워 화제를 모았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의젓하게 사모관대에 백마를 탄 신랑은 이경식(三○, 이태원동) 군, 화려한 활옷에 용담을 꽂고 수줍은 듯 호색 수실 늘어진 가마에 탄 신부는 고종순(二五. 경기도 화성군) 양!
한양공대 토목과를 재작년 졸업한 신랑과 여고를 나온 신부가 이같이 서울 한복판에서 색다른 구식결혼 행렬을 하게 된 것은 시골색시를 고르던 신랑이 이왕이면 시골색시...
1963-03-13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공사 도중인 고종 三년에는 아주 국고가 텅 비어 버렸다. 그리하여 당백전이란 신 화폐를 내어 한 푼 돈을 백문으로 쓰게 하였다니 나라 재정의 혼란을 가히 알 만하다. 그러나 대원군은 모든 애모를 무릅쓰고 신궁을 덩그렇게 지었고 육조 아문과 각 관사를 높다랗게 지어 백성들은 그 처음 보는 굉장한 궁궐을 모두 입을 벌리고 보았다 한다.
대원군이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기다. 하루는 세도 김씨 집 병익이 생일이라고 하여 그를 청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을 몰아낼 궁리를 하던 대원군은 좋아라고 그 잔치에 참석했다. 주인은...
1963-03-06
이조 오백 년 야사 (계속)
우선 그가 착수한 것은 외척 김씨 일파를 누른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랫동안 조정에 군림했던 소론을 몰아내고 남인 북인을 불러들여 부리는 한편 지방 인민을 참획하는 서원과 향현사를 모조리 철폐하고 문묘에 배향된 선현의 본향 서원과 이 충무공과 김 충무공의 충렬사만 남겨 두었다.
이 서원 철폐령은 처음엔 맹렬한 유생들의 반대를 당하였다. 각처 유생들이 통령 갓에 백포로 올라와 대궐 문밖에 엎드려 서원 철폐령을 도로 거두라고 부복 상소하였다. 그러나 서원의 ●● 일찍 알고 느낀 대원군은 눈을 부릅뜨고 호령하였다. (서원에서 선현을...
가족 관계도
가장
고종
미디어 아카이브에서 발견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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