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처 Cho, Pyeng Yo, wife
선박부 기록
국민보 20건
이민 당시 나이
24세
출신지
Soh Moon An
탑승 선박
Coptic호
도착일
8/22/1904
결혼 상태
married
연대기
8/22/1904
Coptic호를 타고 하와이 도착
(24세)
출처: 선박부 기록
1963-11-20
만물상
요즘 민족주의 논의가 활발하다.
활발하다는 것은 말이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논의는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강연회나 토론회가 열리고 연구회도 생겼다는 소식. 민족주의 논의 「붐」이 생겨난 것이라 할까.
그런데 과연 앞으로 우리 군민의 흉금을 울리고 납득이 갈 수 있는 민족주의의 사상체계가 이룩될 것인지 아닌지 만물상자는 ...
출처: 국민보
1963-01-30
최고위원 一차로 五명 예비역 편입
최고회의
김동하(외무국방 위원장)
김재춘(문교사회 위원장)
이석재(법사 위원장)
강상욱 위원
오정근 위원 등
五명의 최고위원은 제一차로 군복을 벗고 예비역에 편입되어 혁명주체 중심의 신당(가칭=재건당) 발기인 대회에 참여하도록 되었다.
최고위원들이 이달 말에 일괄 예편키로 된 당초의 방침을 변경하여 우선 五명의 예편 조처(군복을 벗는 조처)가 취해지는 것은...
출처: 국민보
1962-10-10
천자춘추
지정된 열흘이라는 짧은 시일에 六十여 개 공장을 돌아다녀야 할 일이 있었다. 물론 다행이도 그 공장이 서울근교에 있는 공장이고 보니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경영내용을 살펴야할 목적 하에서는 열흘은 무무 짧은 감이 있었다.
그러나 三. 四일 다니는 중에 하나의 진실을 찾아내게 되었다.
즉, 기계도 제법 새것이 설치되고 건물도 새로 지은 깨끗한 공장은 경영난에 ...
출처: 국민보
1962-09-19
혁명 후 사태 호전 미군 수뇌들 한국 정제 증언
미국 정부의 한 수뇌자는 의회에서 (박정희) 장군과 한국 군사정부는 한국의 최근 사태를 상당히 호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맥나마라」국방장관은 또한 박 장군의 한국정부는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고 이나 ●●●●●● ●●● ●●●고 ●●●.
동시에 합동참모본부장 (라이만 렘니처) 장군은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오늘날 한국의 군사력은 최소한 혁명...
출처: 국민보
1962-06-20
사건 임의처리 말라 멜로이 유엔(국제연합) 사령관 예하 미군에 강력지시
유엔군(UN군) 사령부 대변인은 八일 미국 군인들과 한국인들이 관련된 여러 불상사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고 말하였다.
전 장병들은 한국 국민들과의 최선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도와 충고를 받도록 계속되어 왔으며 (멜로이) 유엔군(UN군) 사령관은 六일 (송) 내각수반에게 전화로써 최근 사태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그는 미 군법과 일치하는...
출처: 국민보
국민보 관련 기사 (20건)
1963-11-20
만물상
요즘 민족주의 논의가 활발하다.
활발하다는 것은 말이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논의는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강연회나 토론회가 열리고 연구회도 생겼다는 소식. 민족주의 논의 「붐」이 생겨난 것이라 할까.
그런데 과연 앞으로 우리 군민의 흉금을 울리고 납득이 갈 수 있는 민족주의의 사상체계가 이룩될 것인지 아닌지 만물상자는 한차례 「?」를 붙여둔다.
민족주의란 해방 후 한때 우익정객들도 민주주의 민족전선이라는 것을 내세웠으며, 이승만 박사도 일민주의라는 민족주의를 들고 나왔지만 지금은 모두 간 곳이 ...
1963-01-30
최고위원 一차로 五명 예비역 편입
최고회의
김동하(외무국방 위원장)
김재춘(문교사회 위원장)
이석재(법사 위원장)
강상욱 위원
오정근 위원 등
五명의 최고위원은 제一차로 군복을 벗고 예비역에 편입되어 혁명주체 중심의 신당(가칭=재건당) 발기인 대회에 참여하도록 되었다.
최고위원들이 이달 말에 일괄 예편키로 된 당초의 방침을 변경하여 우선 五명의 예편 조처(군복을 벗는 조처)가 취해지는 것은 재건당 발기 상임위원회가 몇 명의 최고위원이 발기 대회 때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十五일 오전 건의하여 즉각 박 의장이 이에 동의, 인선한 것으로 알...
1962-10-10
천자춘추
지정된 열흘이라는 짧은 시일에 六十여 개 공장을 돌아다녀야 할 일이 있었다. 물론 다행이도 그 공장이 서울근교에 있는 공장이고 보니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경영내용을 살펴야할 목적 하에서는 열흘은 무무 짧은 감이 있었다.
그러나 三. 四일 다니는 중에 하나의 진실을 찾아내게 되었다.
즉, 기계도 제법 새것이 설치되고 건물도 새로 지은 깨끗한 공장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오래된 건물 속에서 움직이는 공장은 의외로 충실한 경험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경향이 그렇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건...
1962-09-19
혁명 후 사태 호전 미군 수뇌들 한국 정제 증언
미국 정부의 한 수뇌자는 의회에서 (박정희) 장군과 한국 군사정부는 한국의 최근 사태를 상당히 호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맥나마라」국방장관은 또한 박 장군의 한국정부는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고 이나 ●●●●●● ●●● ●●●고 ●●●.
동시에 합동참모본부장 (라이만 렘니처) 장군은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오늘날 한국의 군사력은 최소한 혁명 이전과 같은 정도의 능률은 가지고 있다)고 의원들에게 보장했다.
이와 같은 논평들은 (미국 하원 세출 위원회)에서 있은 미국 대외 군사 원조예산에 관한 증언에서 행하였다.
이 점...
1962-06-20
사건 임의처리 말라 멜로이 유엔(국제연합) 사령관 예하 미군에 강력지시
유엔군(UN군) 사령부 대변인은 八일 미국 군인들과 한국인들이 관련된 여러 불상사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고 말하였다.
전 장병들은 한국 국민들과의 최선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도와 충고를 받도록 계속되어 왔으며 (멜로이) 유엔군(UN군) 사령관은 六일 (송) 내각수반에게 전화로써 최근 사태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그는 미 군법과 일치하는 필요한 조처를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고 부언하였다.
또한, 미군 부대 사령관들은 예하 장병들에게 사건을 임의로 처리하지 않도록 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새로이 내리고 있...
1962-06-20
박 의장 내각에 七개항 긴급지시
박 의장은 八일 하오 고려대학, 서울대학생 (데모) 사건에 대한 보고를 청취하고 내각에 대하여 七개 항목의 수습책을 긴급 지시하였다.
박 의장은 동 지시에서 (이번 데모는 학생들의 애끓는 뜻과 동기를 이해해주고 일체 불문에 붙일 것이며, 구속된 학생은 즉시 전원 석방해주라)고 말하고 (앞으로의 데모에 대하여는 그 이유와 규모의 여하를 막론하고 단호히 법으로 엄중 조처하라)고 지시했다.
박 의장은 이번 미군 폭행사건을 계기로 한·미(한미) 행정협정 체결교섭에 대하여 앞으로 계속 노력할 것이며, 정부는 동 교섭경위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1962-06-20
한·미 행정협정(한미행정협정) 촉구 데모로 구속된 학생 모두 석방
서울시 경찰국에서는 八일밤 八시 반을 기해서 (집회에관한임시조치법) 위반혐의로 七일 구속했던 고려대학 (데모) 사건의 주동자 十三명을 석방하는 한편 八일 서울대학교 (데모) 사건의 관련자로 연행됐던 서울대학생 四十七명을 귀가조처 하였다.
시경에 구속되었던 고려대학생 十三명은 八일 하오 十시 五十분 전원 석방되어 시경버스 편으로 모두 집에 돌아갔다.
웃음을 지으며 시경을 나선 일행 중 정치외교과 二년의 (김덕규) 군은 (앞으로 학업에 열중하겠다. 그러나 한·미 행정협정(한미행정협정)이 조속한 시일내에 체결되리라는 것을 끝내 믿고 있다...
1962-05-02
한국 내의 혼혈아 문제의 어린이 (조니)
(조니 루이스=가명) 十五세의 아버지는 이름 모를 흑인 병정이다. (조니 조니) 하고 그를 귀엽게 부르던 아빠가 본국으로 돌아간 다음에 (조니)는 엄마하고만 같이 살았다. (조니)는 물론 아빠의 얼굴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조니)가 여섯 살이 되자 그는 김자수(가명)라는 이름으로 부산 모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얼핏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그의 검은 피부를 같은 반 아이들이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을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으나 (조니)는 차츰차츰 그의 피부 빛깔이 딴 아이들과 다른 것을 깨닫기 시작하...
1962-03-21
불교계의 분규 수습 八년간의 분쟁 드디어 해결
지난달 관계 당국은 승려 자격 문제로 대립되고 있는 비구, 대처 양측에 대하여 오는 二十八일까지 이 문제를 완전히 타결, 불교 분규 수습을 최종적으로 성공시키도록 불교재건 비상종회에 통고하는 한편 二월 안으로 완전한 화동(서로 좋게 합치도록)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정부로서 (직접적인 조처)를 단행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 알려졌다....
1961-12-20
언커크 보고서 (초)
(계속)
끝으로 장 정권은 一九六二년도부터 시작하기로 된 五개년 계획의 최종적인 검토를 기다리는 동안 一九六一년도에 필요되는 직업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국토건설사업이라 칭하는 대규모 토목 사업에 착수하였다. 군사혁명 지도자들도 一九六一년 五, 一六 이후 동일한 기본적 문제에 직면하였다.
군사정부는 장 정권이 시도한 개혁 정책을 도습하였고 장기계획에 우선 필요한 신정책을 수립하였다.
그 예로는 전기회사 三사를 통합하였고, 중소기업 은행을 창설하였으며, 멀수 문제를 단호히 조처하였고, 정기 예금의 이자를 인상하였고, 시중 은행의 ...
가족 관계도
함께 승선한 동향 사람들 Coptic호 (8/22/1904) · Soh Moon An 지역 3명
지원열
28세
Soh Moon An
조병요
24세
Soh Moon An
이경수
23세
Soh Moon An